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라즘 왕조 (문단 편집) === 영토 확장 === 일 아르슬란이 사망한 뒤 두 아들들 사이에 샤 계승 다툼이 발생했다. '''술탄 샤'''(1172 ~ 1193)가 정치적 지지를 얻어 수도인 구르간지(현 [[코네우르겐치]])에서 샤에 올랐으나, 서요의 군사 지원을 받아낸 '''테키쉬'''(1172 ~ 1200)가 쳐들어오자 그대로 도망쳤다. 이후 술탄 샤는 호라산 지역에서 셀주크 제국의 잔당이나 [[고르 왕조]] 등에 의탁하며 호라즘 본토의 테키쉬와 대립했다. 테키쉬와 서요의 관계가 악화된 틈을 타 술탄 샤와 카라 키타이가 테키쉬를 협공하기도 했으나 결국 패배했고, 술탄 샤는 호라산 지역에 독자 세력을 구축하는 데 만족했다. 테키쉬는 1193년 술탄 샤가 죽을 때까지 그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지만, 술탄 샤가 사망하자 그의 세력을 큰 힘 들이지 않고 흡수할 수 있었다. 호라산 일대의 패자가 된 6대 샤인 테키쉬는 1194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나시르와 함께 마지막 셀주크 술탄 투으룰 3세를 공격해 제거하고, 이란 서부까지 진출했다. 1200년에 숨을 거둘 당시 테키쉬는 '''이란 서부, 호라산, 호라즘 일대를 아우르는 동부 이슬람 세계의 최강자였다.''' 그러나 이 급격한 영토 확장이 완전히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프간의 고르 왕조는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호라산을 위협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호라즘은 서요에 대한 복속 상태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다. 또 테키쉬는 군사력 증강을 위해 튀르크계 킵차크의 일파인 캉글리족 출신 여성 [[테르켄 하툰]]과 결혼하는 등 북쪽의 튀르크, 킵차크계 부족 집단들을 적극적으로 호라즘으로 끌어들였다. 이 부족들은 호라즘의 급속한 영토 팽창에 도움이 되었으나, 이슬람화도 거의 되지 않은 데다 난폭하고 잔인해서 새로 정복된 이란과 호라산 일대 주민들의 증오를 받았다. [[셀주크 왕조]]의 잔여 세력 말살을 위해 동맹을 맺었던 바그다드의 칼리파 역시 호라즘의 급격한 확장을 경계했고, 결국 갈등이 격화되어 전쟁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은 이후 무함마드 2세 시대의 급격한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1200년 테키쉬가 죽자 이란 서부 지역 주민들이 호라즘 주둔군에 대항해 폭동을 일으켰고, 호라산에서는 테키쉬의 조카가 고르 왕조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지만 새로 등극한 '''[[알라 웃 딘 무함마드|무함마드 2세]]'''(1200 ~ 1220)는 이를 모두 진압했다. 1204년에는 호라즘 본토로 쳐들어온 [[고르 왕조]]의 [[무이즈 앗 딘 무함마드]](무함마드 고리)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기도 했지만 결국 몰아내는 데 성공했고, 1206년 무함마드 고리가 죽은 뒤로 고르 왕조는 내전으로 분열되어 무력해졌다. 고르 세력의 위협이 약화되자 무함마드 2세는 트란스옥시아나로 눈을 돌려 종주국인 서요와 본격적으로 적대하기 시작했다. [[사마르칸트]]의 카라한 왕조 세력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대신 서요 국내에서 [[나이만]] 족장 출신인 [[쿠츨루크]]가 반란을 일으켜 제위를 찬탈한 틈을 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서요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이후 무함마드 2세는 카라한 왕조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수도를 구르간지에서 사마르칸트로 천도했으며, 1215년 고르 왕조가 멸망하자 아프간 북부와 가즈니 일대까지 차지했다. '''호라즘 왕조는 역대 최대의 영역을 확보했으며, 동부 이슬람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패권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정복 활동이 마무리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호라즘은 점령한 지역들에서 그리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당시 동부 이슬람 세계는 [[셀주크 제국]]이 붕괴된 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정치적 혼란과 전쟁이 지속되어 매우 피폐해진 상태였다. 호라즘은 1170년대까지 호라즘 지방만 다스리던 소국이었다가 외부의 튀르크, 킵차크 부족 집단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동부 이슬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군주인 무함마드 2세는 모후 테르켄 하툰을 중심으로 뭉친 킵차크 부족 전사들과 적대적인 점령지 주민들 사이에서 어느 쪽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었다. 거기다 갑자기 넓은 지역을 정복하면서 사방을 들쑤시고 다닌 데다, 명목상 이슬람 세계의 구심점인 아바스 칼리파와도 노골적으로 대립하면서 주변 거의 모든 세력과 외교 관계가 최악이었다. 특히 칼리파와의 대립은 호라즘 군대가 대놓고 바그다드를 향해 진군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비록 1218년의 이 공격은 자그로스 산맥의 혹독한 겨울 날씨 때문에 무산되었지만, 이슬람 세계 내에서 호라즘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이처럼 호라즘은 외형만 거대한 조각이불같은 불안한 상태에서 [[몽골 제국]]과 접촉하는 비운을 맞게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